<'타산지석(他山之石)'과 '줄탁동시(啄同時)'Ⅰ>

고향 양산으로 돌아온 2008년 8월, 딱 그맘때 나온 제목부터 자극적인 책, 강준만 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 는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보아도 통용되는 내용들이 많다.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정치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보자, 분권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지방에서의 적극적인 시민운동을 필요로 한다, 지방 내부의 개혁과 인재육성을 지역분권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책임을 중앙에만 묻지 말고 오히려 지방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더 비중을 둬야한다. 역설 같지만 지방이 지방을 잘 모른다.]

지방분권을 외치면서도 정작 지방 안에서도 불균형이 심화되어가는 현실에 던지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그런 연장선에서 주변지역을 돌아보며 내 지역을 생각해본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배워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겠다. 궁극적 실천은 안에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정확히 바라보며...

#1 - 미리미동국, 密陽
밀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밀양아리랑, 조선시대 3대 누각 영남루, 밀양박씨, 나노산업의 메카, 영화 '밀양', 은하수(빛) 벌판..., 바로 옆 동네 밀양이 문화로의 부흥에 박차를 가해가고 있다기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9월에 밀양시가 후원하고 밀양시문화도시센터,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영남지역 문화기획자협회가 공동주관으로 밀양지역의 문화적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영남지역 문화활동가대회'가 1박2일로 진행되었다. 문화기획자 40여 명이 밀양 곳곳을 돌아보며 상권 활성화, 유휴공간 활용, 도시재생과 관광을 연계한 밀양시의 문화 활성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팸투어 형식으로 진행된 이 활동가대회 뿐 아니라 'MY 문화기획자 양성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양성된 문화전문 인력을 문화도시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시키는 등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밀양시가 어떤 문화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더욱이 지난 10월에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밀양시문화도시센터가 문화도시사업추진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밀양시가 가진 문화 인적자원과 역량들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다양한 경험들과 결합되어 그 성과를 지역사회에 적극 공유해나가며 밀양 뿐 아니라 경남도의 문화도시 사업과 관련한 협업사업에도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어서 무척 반갑고 부러움 가득하다.

지난 10월의 토요일 늦은 오후 '밀양강 오딧세이'와 '밀양야행 날좀보소'를 보러 직접 밀양으로 발걸음 했다. 행사장 주변이 붐벼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가족들과 밀양 시가지를 걸으며 구경을 하는 중에 다다른 밀양강변과 영남루 야경은 예스러움이 묻어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자태를 뽐내며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기분 좋은 토요일 밤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고층빌딩만 지으면 '랜드마크'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는 세태와 달리 세월과 함께, 밀양과 함께 지나왔을 영남루 그 자체가 밀양의 랜드마크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미 동영상을 통해 밀양시문화도시센터가 주관하는 밀양야행의 준비 과정을 본 뒤라 시가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져오며 밀양시내와 아리랑 시장 내의 빈 점포들을 보며 점점 비어가는 지방의 씁쓸한 현실도 절감하는 기회였다. 

야경, 야로, 야사, 야화, 야설, 야식, 야시, 야숙의 8개 프로그램 군으로 진행된 야행은 밀양 사람들의 밝은 웃음과 친절, '날좀보소~ 날좀보소~'라는 밀양아리랑의 흥으로 가득차며 밀양강변과 함께 기억 속에 자리해있다.

자리를 옮겨 환상적인 특수효과와 밀양강과 영남루라는 절경이 조화를 이룬 판타지의 세계 '밀양강 오딧세이'는 밀양시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 왔는지, 또 그 결과가 경남을 대표하는 공연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재)밀양문화재단이 주관하여 밀양만의 차별화된 공연콘텐츠를 위해 밀양강 위에 펼쳐진 워터스크린, 영남루와 숲을 배경으로 한 실경의 멀티미디어 공연은 그 자체로도 지역특화였으며 콘텐츠의 구성에서도 밀양의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판타지 픽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표현했다는 점이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시간 반 가량 진행된 가을바람이 부는 밤인데도 쉴 새 없이 펼쳐지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박진감 넘치는 음향, 미디어파사드와 크레인을 동원한 특수효과, 불꽃 쇼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으며 연신 환호와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공연이 끝난 후, 밀양시장의 인사말씀과 내빈들의 축사는 행사의 첫 머리부터 장식하는 여타의 행사들과 달리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과 시민들에 대한 배려와 감사의 마음이 전해져오며 앞으로도 '밀양르네상스'를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는 다짐은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우리 양산의 지난 삽량문화축전을 떠올려보며 테마가 '빛'이었다는데 양산에서 못 보았던 빛을 밀양에서 다 보고 가는 듯 하여 씁쓸한 기분도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횟수를 거듭한다고 전통과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밀양시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 민관협동의 결과물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다. 
 
#2 - 가락국, 金海  
또 다른 옆 동네 김해가 양산의 문화현실에 대한 자극제가 되기에 늘 관심이 많다. 한 지자체의 지향점을 한 눈에 살펴보기에는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자. 클릭하자마자 나타나는 화면에는 김해가야테마파크, 화포천 습지생태공원, 봉하마을 생태공원, 김해서부문화센터, 경전철 뚜벅투어가 차례로 이어지며 팝업창에는 김해문화도시 100인 토론회, 제12회 김해 국제음악제, 무지개다리사업 문화다양성 네트워크, 제30회 김해예술제, 자원봉사 시민사회 학교 등이 알림으로 뜬다. 이것만 봐도 김해라는 도시가 지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되어지고도 남는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스크랩한 최근의 내용 중 김해 것을 다시 끄집어내어 본다. '경남예술교육원 본원, 김해에 생긴다.', '23일간의 국제미술제, 김해비엔날레', '김해 30년 노포(老鋪) 한우물가게 26곳 선정'. 역사, 생태, 관광, 토론, 음악, 다문화, 복지, 교육, 미술, 경제...., 문화다양성 시대에 딱 들어맞는 내용들을 알차게 진행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재)김해문화재단은 지난 10월 미래하우스(김해한옥체험관)에 문화도시센터를 열었다. 지역의 의제를 발굴하여 시민 스스로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문화도시포럼>, 거점과 외곽을 연결하는 <거점연결 프로젝트>, 시민의 문화력 강화를 위한 <시민문화기획사업>, 문화도시 시민참여 및 확산을 위한 <문화도시 미디어>를 운영 중에 있다. 또 경남도와 김해역사문화도시 추진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전국 문화도시 예비사업지역으로 지정된 10개 지자체 중 역사전통 중심형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임을 강조하며 가야라는 역사를 접목한 문화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김해만의 색깔을 가진 '오래된 미래'를 꿈꾸고 있다.

문화자치, 문화다양성, 라이프스타일, 두 도시 이야기, 살고 싶은 도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문화를 꿈꾸는 2042'를 주제로 한 <김해시민 100인 토론회>가 곧 열릴 예정이어서 배움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김해로의 발걸음을 해야겠다 싶다. 

1990년대 '문화의 민주화' 이후, 문화정책 전개에서 문화시설을 짓기만 한다고 시민들이 저절로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듯 시민의식 고취와 시민의견 수렴이라는 과정으로 문화의 저변을 만들어 나가고,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김해를 보며 현재 양산은 어느 시기에 와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부럽고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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