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군지방지도> 다방(茶坊) 표기 확인
신용철 박물관장 "토지 구획별 세금 징수했다"
"황산역 영남대로 통해 차 공급됐을 개연성 커"

1872년에 편찬된 <양산군지방지도>에 다방(茶坊) 표기가 보인다. 아래 ㅅ자모양 집은 공납을 관리했던 지방 행정 시설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진제공=양산시립박물관)

조선시대 양산에서 차를 공납했다는 기록은 여럿 확인되는데 구체적인 위치는 추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방마을이 차 공납지 였다는 것을 크게 뒷받침하는 사료가 분석돼 지역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1872년에 편찬된 <양산군지방지도>에 따르면 현재의 다방마을이 다방(茶坊)으로 표기돼 있다. 차 다(茶)자에 동네 방(坊)자다. 또 ㅅ자 모양의 지붕 7개도 확인된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이에대해 "방(坊)자는 토지를 구획별로 나눈 것을 말한다. 이는 세금을 징수하는 조세 방법으로 차를 네모 구획으로 나눠 재배해 일부를 한양에 공납했다는 의미다"고 밝혔다. 이어 "ㅅ자 지붕 집들은 차(茶)와 관련된 지방 행정 부속 시설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황산역과 차(茶)의 연관성도 주목된다. 교통의 요충지인 영남대로에 위치한 황산역을 통해 차(茶)가 대량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 관장은 "황산역에 차 시중을 드는 특정 여성들인 다모(茶母)도 거주했으며 이들이 차를 공급하기도 하고 황산역에 말을 빌리러 오는 암행어사를 수행하기도 했다"며 "여기서 사용된 차가 다방마을에서 생산됐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인접한 법기리 가마터에서 생산한 찻사발에 타 먹던 차도 다방마을에서 생산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고 했다. 이처럼 황산역, 구획별 차 재배지 표기 지도, 법기리 가마터 등이 인접해 있는 사실로 추정했을 때 다방마을이 차 재배지라는 추론이 나온다.

앞서 본지는 양산 다방마을에 야생 차나무가 대량 자생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의 다방(多芳)마을 지명이 19세기초에 편찬된 <양산군지도>에는 다방리(茶方里) 표기된 사실에 주목해 이곳이 차나무 공납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한편, 1833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양산편에 '차가 현재는 생산되지 않는 곳'으로 표기돼 있고 19세기에 영남대로가 쇠락한 것을 미뤄볼 때 한반도의 차 문화도 함께 퇴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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